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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ㅣ서울산악조난구조대 장애인 봉사산행] “평생 처음 산에 올랐다니 얼마나 기쁠까요?”

월간산
  • 입력 2019.07.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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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산악조난구조대 주도로 1년 두 차례 봉사산행…봉사자 및 장애인 만족도 높아

인왕산 방면
전망대에서 봉사자와
장애인들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인왕산 방면 전망대에서 봉사자와 장애인들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258만5,876명.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8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른 국내 장애인 수다. 이 중 청각 및 언어장애인 36만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신상의 이유로 산을 오르기 어렵다. 타인의 도움이 없다면 등산의 기쁨과 행복을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처지다.

다행스럽게도 ‘등산의 행복을 함께 나누자’며 팔을 걷어붙인 이들이 나타났다. 바로 서울산악조난구조대다. 구조대는 지난 2017년부터 ‘장애인과 산악인이 함께하는 즐거운 산행’ 행사를 매년 두 번 개최하며 장애인들의 등산을 돕고 있다. 구조대 김형수 대장의 주도로 시작된 이 행사에는 중동고 동문산악회를 비롯한 일반 친목산악회들이 매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첫 봉사산행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안산 자락길에서 열렸다.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온 장애인 52명과 구조대원 15명을 포함한 일반 산악회 및 단체 소속 11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산행에 나섰다. 

김 대장은 개회식에서 “행사를 거듭할수록 참가를 원하는 봉사자와 장애인 수는 늘어나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도 봉사 산행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꺼이 함께해 준 클라임코리아, 네파, PAT, 스탠리, 혜초여행사 등 후원사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서울시산악연맹 신영철 부회장도 “회를 거듭할수록 짜임새 있는 행사가 되어가는 걸 느낀다”며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총 7대의 휠체어가
동원됐다.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장애인들은 봉사자의
손을 잡고 이동했다.
이날 행사에는 총 7대의 휠체어가 동원됐다.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장애인들은 봉사자의 손을 잡고 이동했다.

시혜가 아니라 같이 걸을 뿐

맑은 날씨, 휠체어의 바퀴가 경쾌하게 돌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김 대장은 “하늘도 감동했는지 첫 행사부터 이번 5회차에 이르기까지 행사 당일에 비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안산 자락길은 거대하게 솟은 메타세쿼이아 숲길부터 무성하게 핀 찔레꽃이 눈을 즐겁게 하고, 끝물에 이른 아까시 향기가 은은한 걷기 좋은 도심 속 숲길이다. 이곳은 무장애 탐방로로 이뤄져 있어 휠체어로 전 구간을 다닐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껏 산을 즐기며 약 7km의 숲길을 거닐었다. 

다만 서울트레킹 행사와 일정이 겹쳐 등산로가 복잡했던 점이 아쉬웠다. 서울트레킹 행사에 참여한 한 젊은 커플이 혼잣말로 “장애인이 굳이 산에 와서 여럿 고생시킨다”고 해 순간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 지나친 병목현상 때문에 내뱉은 불평이었다. 한 봉사자는 이에 “여기 누구도  시켜서 하는 사람 없다”며 “장애인들에게 ‘봉사’한다는 시혜의 성격이 아니라 그저 등산의 기쁨을 같이 나누려는 것일 뿐”이라고 의연하게 답했다.

이러한 편견은 사소하다고 할 만큼 행사 내내 장애인과 봉사자 모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소통은 원활하지 않아도 마음과 감정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마친 후 한 지체장애인에게 산이 어땠느냐고 묻자 길에서 보았던 이팝나무, 산뽕나무, 아까시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찔레꽃, 꽃무릇 등을 한참 열거한 후 “이맘때의 산은 정말 좋다”며 웃었다. 재방문 의사를 묻자 “너무 좋긴 한데 (봉사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봉사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컸기 때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괜한 자책감이 없어지려면 앞으로 이러한 행사가 더욱 많아져 장애인들이 산에 오는 일이 낯설지 않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외국인으로 서울썬산악회 소속이자 러시아 국적인 보카레프 세라핌Bochkarev Serafim씨도 “너무나 좋은 목적의 행사였으며, 이런 행사가 더 많아져야 현대 한국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태화복지재단 홍보대사 배우 정동환.
태화복지재단 홍보대사 배우 정동환.
Mini Interview

형식 밖의 감정이 주는 감동

태화복지재단 홍보대사 배우 정동환

국민 배우 정동환씨도 이번 봉사산행에 참여했다. 5년째 태화복지재단의 홍보대사로 일하는 그는 바쁜 생활 중에도 재단행사는 꼬박꼬박 참석한다는데, 그중에서 가장 각별한 것이 바로 이 봉사산행이라고 했다. 

“처음 장애인과 함께 산행에 나섰을 때 한 지적장애우가 마구 소리를 질렀던 것이 가장 기억납니다. 기성이자 괴성이어서 ‘산행이 괴로운가’했는데 봉사자가 평생 처음 산에 올라 기뻐하는 것이라 알려 주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방식이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보편적인 형식이 있다. 정씨는 “우리(비장애인)는 우리의 관념과 경험만 갖고 있다”며 “평생 대중이 공감하도록 보편의 감정을 연기해 온 배우로서 이처럼 틀 밖의 감정 표현을 접한 순간이 충격이자 감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에게 평생 처음의 등산 경험을 안겨 준다는 것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쁜 일입니다. 작은 도움을 주고 오히려 더 큰 기쁨을 받고 가게 되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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